2010. 6. 2. 17:04ㆍPEOPLE Interview
김도건 라드웨어코리아 사장의 얼굴에 여유가 느껴졌다. 그간 힘겹게 사업을 이끌어 오다가 지난해 호재를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L4/7 전문 업체인 라드웨어는 지난해 3월 노텔의 L4/L7 애플리케이션 딜리버리 사업부인 알테온을 1천 800만 달러에 인수 완료했다. 알테온 장비는 국내 관련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운도 따랐다. 2009년 7월 7일 발생했던 분산 서비스거부(DDoS) 공격은 라드웨어코리아에게 또 다른 호재가 됐다.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란 말이 따로 없을 정도의 한 해였지 않았을까?
김도건 사장은 “사정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죠”라고 말하고 “알테온 장비가 가장 많이 팔렸던 때가 2002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판매 성과도 그 때와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객들의 요구에 제대로 제품을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라고 달라진 위상을 이야기 했다.
그는 또 DDoS 공격으로 매출이 오르긴 했지만 고객들이 이번 기회에 보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김 사장은 “보안은 기술이 아닌 경험입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어진 노하우를 가지고 자산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 내야 합니다. 저희가 방패를 잘 만들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창이 좋습니다. 저희의 기술력과 고객들의 다년간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행복한 고민이다. 남들은 경제 위기로 고객들이 지갑을 꽁꽁 닫아 실적 맞추기가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L4/7 장비는 여러 서버 앞에 위치해 서버에 몰리는 네트워크 트래픽을 적절히 분산해 주는 장비다. 근래 들어서는 단순한 트래픽 분산에만 머물지 않고 어떤 트래픽들인지 좀더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기능들이 탑재되고 있다. 보안 기능을 비롯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가상화 기술들과의 융합, 멀티미디어 콘텐츠 처리, 인터넷전화(VoIP)에 대한 지원 등 장비가 점차 지능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고객들은 아주 저렴한 x86 서버들을 병렬로 연결해 대규모 서버와 스트로지 ‘풀(PooL)’을 만들고 있다. 기업들이 대형 서버 한 두대로 고가용성(HA) 구성을 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100대의 서버 중 10대가 고장이 나더라도 90대가 동일한 콘텐츠를 보유하면서 고객들의 요구에 응대하고 있다. L4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또 고성능의 저렴한 하이엔드 서버가 속속 출시되면서 서버 통합 바람도 불고 있다. 그만큼 L4/7 장비도 줄어 들고 있다.
가상화와 보안,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이해 등 제품 기능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어나야 하는데 장비 구매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김도건 라드웨어코리아 사장은 “그래서 저희가 3년전부터 레이어 8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라고 입을 떼었다. 네트워크 장비는 레이어 1~레이어 7이 끝이다. 그런데 레이어 8라니 좀 당황스러웠다.
김도건 사장은 “네트워크 장비들은 기본적으로 패킷을 어떻게 처리하고 분배해 줄지 고민해 왔죠. 네트워크 인프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로 다룰지에 집중해 온 것이죠”라면서 “비즈니스 이벤트 로그를 분석해서 고객들의 비즈니스 지향성을 파악하고 대응해야 됩니다. 제조업체와 서비스 업체간에도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기 마련이지요. 장비가 지능화되고 있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업체들은 갈수록 자신들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고, 김 사장 또한 마찬가지 입장을 전했다. 광대역 유무선 네트워크 망이 구축된 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들이 이 위에서 안전하고 빠르게 전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업체들과 네트워크 업체들의 협력이 늘어나고 있고,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개발 툴 킷들을 제공하면서 밀접한 통합을 외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는 ‘후식’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그는 IT 분야에 입문한 지 이미 15년이 넘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장의 변화 못지않게 ‘세상’의 ‘흐름’을 보는 눈이 멋지다. 라드웨어가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김도건 사장과의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문뜩 궁금해졌다.
국내 사업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클라우드라는 거대한 물결이 정말 밀려오고 있는 것인지, IT 벤더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단순한 마케팅 용어인지 말이다. 또 스마트폰 시장의 급부상이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는지 말이다.
가장 앞에서 이를 지켜본 김도건 사장의 식견이 궁금했다.
그는 “클라우드는 정말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전하고 “데이터센터를 놓고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라드웨어도 이런 기회를 보고 많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짧았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는 조금 길게 말했다. 역시 만나길 잘했다.
김도건 사장은 “지금 일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정보기술들이 각 개인에 맞게 일인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개인들이 기업처럼 네트워크 트래픽의 한 피어(Peer)가 되는 것이죠. 10년 전 꿈꿔왔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폰을 선보인 스티브 잡스가 가능성을 보여줬죠”라고 전하고 “이런 변화를 빨리 수용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프더라도 더 많이 개방해야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출장을 다녀본 이들은 다들 느끼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노트북을 들고 해외 출장을 다닐 때 그들의 손에는 노트북 대신 블랙베리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좋은 인프라를 마련해 놨지만 그 위에 세계를 감탄시킬 만한 콘텐츠나 기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만큼 각 부분에서 경쟁에 뒤쳐져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이제 모든 개인들은 정보를 직접 생산해 내면서 바로 소통을 합니다. 포털이라는 게이트키퍼를 두지 않고도 소통할 도구들이 하나씩 등장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모바일 분야의 바람이 이를 가능케 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길목에서 힘을 발휘해 왔던 국내 포털들이 앞으로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가장 따끈따끈한 실시간 정보는 이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안에서 얻고 있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안에 PC’를 들고 전세계 어디를 가던지 네트워크와 연결된 이들이 쏟아낼 새로운 ‘소통’의 기술과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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